유창하지 못했던 왕이 전하는 위로: 영화 '킹스스피치'

장서희 승인 2020.12.18 09:59 | 최종 수정 2020.12.18 17:18 의견 0

영화의 첫 장면을 점령한 BBC의 마이크는 마치 하늘 위 거대한 방공기구를 연상시킨다. 웅대한 마이크에서 물러난 카메라는 곧 박람회 폐막 연설을 맡은 요크공작(버티)의 얼굴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 여백도 없이 크게 클로즈업된 그의 얼굴은 절반 이상이 비스듬하게 잘려 나간 파편 상태로 불안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이는 과거 필름누아르에서 인물을 피폐하고 기괴하게 묘사할 때 즐겨 사용하던 초커 클로즈업 choker close up으로 볼 수 있다).

요크공작과 그의 아내는 마치 무대 한 켠을 지킬 것을 지시 받은 단역 배우처럼 화면 구석에 치우친 채 초라하게 등장한다. 왕위 계승 서열 2위라는 엄청난 지위에 걸맞은 근엄함이나 위풍당당함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반해 카메라는 옆방에서 생방송을 준비하는 남자 아나운서의 모습을 아래에서 우러러본다. 대영제국의 왕자인 버티보다 이 평범한 아나운서의 모습이 더 권위있고 당당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버티의 딱한 처지를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 더듬이 왕자 버티가 이 악몽과도 같은 연설을 앞두고 느끼는 불안과 초조를 화면과 카메라가 몸소 그려내는 덕분이다. 영화 '킹스스피치'의 오프닝이다.  

영화는 말을 더듬는 왕자 버티와 실패한 배우이자 무면허 언어치료사인 라이오넬의 만남과 치유의 과정을 담담히 그려낸다. 그들은 너무도 다른 신분으로 만나 서로 대화하고 다투고 성장하며 화합한다. 1930년대 대영제국의 왕위 계승 이야기를 그려내는 영화라면 대개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대작이 떠오르겠지만, '킹스스피치'는 회벽으로 둘러싸인 라이오넬의 간소한 치료실을 주무대로 쓰면서 공작의 대저택이나 화려한 궁전마저 한정된 공간만을 허용한 채 인물에 집중한다.

영화 '킹스스피치'는 흡사 연극과 같이 담백하고 간결하지만, 그 한편으로 화면 설정을 통해 연극과의 경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영화 초반부에 언어 치료를 받으러 온 버티는 화면 한 구석에 확연히 치우쳐 있다. 타고난 왼손잡이를 교정해야 했으며 형에 대한 편애와 아버지의 호통 속에서 말 더듬이로 살아온 버티에게는 그저 화면의 구석 한 켠이 허락될 따름이다. 그러나 버티의 자리는 라이오넬과의 만남이 계속될수록 조금씩 일상적인 위치로 변화해간다. 

사랑을 좇아 왕좌를 버린 형 대신 갑작스럽게 왕위에 오른 버티는 연설이 곧 리더십이자 일상이어야 하는 왕의 자리에서 힘겹게 버텨나간다. 그런 버티가 세계 전역의 국민들에게 2차 대전이라는 또다른 전쟁의 시작을 전해야하는 역사적 순간을 마주한다. 연설을 하러 가는 버티의 뒤를 좇는 카메라는 깊은 심도로 버티가 걸어 나아갈 복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버티의 앞모습을 담은 다음 장면에서 그의 등 뒤로 보이는 배경은 얕은 심도 때문에 흐릿하게만 보인다. 버티는 이제 또렷이 보이는 복도를 따라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운명에 처해있다. 이제 버티는 뒤돌아갈 길이 더 이상 없어 보인다. 그렇게 당도한 밀실에서 버티는 마치 교향곡을 지휘하는 듯한 라이오넬의 코칭과 함께 일생일대의 ‘킹스스피치’를 펼친다. 연설을 시작할 때 버티와 라이오넬은 둘다 화면 중앙을 차지한 채 마주서 있다. 실패한 단역 배우와 천덕꾸러기 말더듬이였던 두 사람은 그렇게 각자의 주인공 자리를 찾아간다. 

킹스스피치가 이어지는 동안 궁궐에서, 카페에서, 공장에서 왕의 음성에 말없이 귀 기울이는 국민들의 모습이 차례차례 지나간다. 불과 얼마 전까지 못 미더운 말더듬이 왕위 계승자였던 버티가 전쟁을 앞둔 그들에게 선사한 것은 단순한 연설이 아니라 뜨겁고 깊은 왕의 위로였다. 결사항전의 구호보다 국민들에게 더 큰 힘이 되어준 것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오랜 부족함을 끝내 극복해낸 가장 용감한 왕이 여기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실제로 조지 6세는 공습의 위험 속에서도 여전히 버킹검궁을 지키며 다수의 전시 연설로 국민들을 다독이며 함께 싸우는 역할을 해냈다고 한다. 

이처럼 세계 전역의 영국민들의 기운을 북돋아준 1939년도의 킹스스피치는 독일을 상대로 한 영국 내각의 선전포고 이후 왕실이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국제법은 전쟁을 하기 전에 전쟁의 개시를 선포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는 1907년 제2차 헤이그 회담에서 체결된 ‘개전에 대한 협약’에서 성문화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전쟁 개시 전에 이유가 있는 선전포고를 해야 하며, 혹은 어떤 조건에서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내용의 최후통첩이 있어야 한다. 본 협약의 체약국인 영국은 독일군이 폴란드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전쟁을 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하였고 이를 거부한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던 것이다.

반면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할 때 국제법이 요구하는 선전포고의 책무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그리하여 독일의 전쟁은 내용은 물론 절차에서부터 이미 국제법 위반을 내재하고 있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비단 역사 속 추축국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현재 우리도 선전포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19라는 적과 격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생명과 일상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상대는 2차 대전 당시 그들의 적국보다 더 공포스러울 수도 있다. 80년 전 영국의 왕이 말했듯이 전쟁은 우리에게도 고된 여정일수밖에 없지만, 우리 모두가 굳은 결의로 신념을 잃지 않는다면 이 전쟁에서 우리 또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영화 '킹스스피치' 제작: See-Saw film, 감독: Tom Hooper, 수입: 영화사 그랑프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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