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sy의 차이야기 여덟번 째] "Blue tea도 있나요?"

김원경 승인 2021.01.13 09:39 | 최종 수정 2021.01.13 09:49 의견 0

"Blue tea도 있나요?" 

캐나다 미남 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옆모습이 닮아서 잠깐 정신을 딴 데 두었을까?
당연히 그가 요즘 우리 찻집 베스트셀러인 신비한 파란색 차  '스머프 차이 라테'를 주문한다고 생각했다. 

차라면 홍차밖에 모르는 캐나다 사람들을 계명하기 위해  T-Squre에서  만든 파란색 버터플라이 피 꽃차, 스머프 차이 라테.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재미있는 이름에 걸맞은 스머프의 파란색에다 유기농에 맛도 좋아서 차를 처음 접하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간혹 이 차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손님들이 '파란 거 그거 뭐였더라' 식으로 주문하곤 한다. 

파랗게 차를 우리고  비단 같이 뽑은 스팀 우유로 조심조심 귀여운 토끼 모양을 낸다. 하얀 우유 거품 위에 나무 막대로 스머프 파란 찻물을 잉크처럼 찍어 동그란 토끼 눈을 그려 넣고 양 볼에 수염을 세 줄씩 그으면 완성. 

차를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놓는데 키아누 리브스가 토끼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뭔가 잘못되었다. 

"Blue tea를 시켰는데요" 

아뿔싸. 스머프의 Blue가 아니었구나.
Blue tea, 우롱차를 시킨 거다.
스머프의 파란색에 우롱당하다니. 

서둘러  진짜 Blue tea를 우린다. 
녹차와 홍차의 중간 지점인 반 발효차.
마침 최고의 Blue tea라 불리는 철관음이 한 통 있다.
Blue tea는 늘 이런 식이야. 까다롭게 굴어. 

Blue tea( 우롱차)는 다른 차보다 묘하다. 종류도 많고 범위도 넓다.
녹차는 발효시키지 않으면 되고 홍차는 발효시키면 되는데 Blue tea, 우롱차는 발효시키다가 어딘가에서 딱 멈춰야 한다. 멈추는 지점의 절묘함에 따라 수많은 Blue tea들이 생겨났다. 빅토리아 여왕이 이름 붙였다는 '동방 미인'이니 이름도 무서운 대홍포, 대만의 수많은 우롱차 브랜드들이 그렇다. 발효 정도도 20에서 60까지 다 달라서 어떤 건 White tea에 가깝고 어떤 건 Black tea 같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철관음은 더 까다롭게 만든다. 
주청과 홍배, 위조, 살청, 포유 등 만드는 과정도 서너 배 더 복잡하거니와 그 특유의 동그랗게 말린 모양을 만들려면 적어도 15번 이상 찻잎을 말았다 폈다를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 모든 집요함은 철관음 찻잎에 상처를 내기 위한 것이다. 상처를 내고 멍들고 시든 부분을 떼어내고 다시 상처를 내기를 수없이 반복하면 역설적이게도 달콤한 향이 나기 시작한다. 진한 과일 향이라고도 하고 달콤한 꽃향기라고도 하는 우아한 상처의 향은 철관음을 천하 10대 명차로 만들었다.

견고하게 밀봉해 놓은 알루미늄 포장을 뜯으니 푸첸성 안시현에서 머나먼 캐나다 동부까지 오는 긴 여정을 참았을 꽃향기가 진하게 터져 나온다.
물은 뜨겁게 100도로. 동그랗게 말린 찻잎을 다시 피게 하려고 세차를 짧게 30초간 한다.  250cc의 유리 티포트에 찻잎을 1.5g. 45알을 넣는다.

향을 지키려면  한국식으로 개완배에 우리고  문향배에 따르면 좋겠으나 여기는 캐나다다. 동양의 차 문화를 현지 스타일로 번역하는 사명을 스스로 부여한 나는 서양식 투명 유리 티포트와 더블 월 유리잔, 정확한 타이밍으로 향을 지켜내야 한다. 

키아누 리브스가 이제 철관음을 잔에 따른다.
오랜만에 긴장한다. 
차를 아는 손님이라 긴장한 것이지 그의 옆 모습 때문은 절대 아니다. 

홍차에만 익숙한 대다수 캐나다 사람들은 홍차 나무, 녹차 나무가 따로 있는 줄 안다. 카넬리아 시넨시스라는 한가지 차나무에서 홍차도 나오고 녹차도 나오고 백차도 나오고 우롱차도 나온다고 하면 깜짝 놀란다. 그렇게 차에 대해 알리고 난 후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 덕에  늘 공부할 의욕이 생긴다. 

"향이 참 좋네요. 단맛도 나고"
"차 이름이 철관음(Ti Kuan Yin)인데 특이하지요?" 

한 농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를 만들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는데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단다.
다음 날 농부가 관세음보살이 꿈속에서 알려준 대로 가보니 과연 절벽 바위틈에 차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그 차나무를 가져다 깨진 가마솥에 심으니 진귀한 차가 되었다. 소문을 듣고  마을 훈장이 차 맛을 보러 왔다가 감동하여 이름을 지었으니 <철관음>, 가마솥에 관음보살의 영험으로 기른 차라는 뜻이었다. 

찻집을 열어서 좋은 점이 있다.
관세음보살이 점지한 귀한 차를 매일 마시는 것.
옛날 왕들도 못 누렸던 호사가 아닌가. 

손님이 철관음 마시는 모습을 힐끗 보고 있었는데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가 눈웃음을 웃는다. 
관셈보살. 

찻집을 열어서 좋은 점 또 하나.
가끔 키아누 리브스들을 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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