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sy의 차이야기 아홉번 째] Silver Moon

김원경 승인 2021.01.21 10:30 | 최종 수정 2021.01.27 14:15 의견 0
Beegie admire
Beegie admire

몇 시간 째 Fly me to the moon만 듣고 있다. 
Beegie Adair trio의 연주에 꽂혀버린 탓이다. 

골이 잔뜩 난 채로 고장 난 오디오 앰프를 바꾸면서  음질 테스트로 유튜브 hi-fi 음원을 우연히 틀었다가 기분이  3분 만에 상쾌해지고 말았다.
할머니 피아니스트 Beegie Adair의 경쾌한 스윙 터치와 놀라운 임프로바이제이션. 분명 익숙한 멜로디인데 음표들이 톡톡 옥수수알처럼 튀기는 게 새롭고 재미있다. 독창적인 앤딩까지. 상쾌한 감동의 Fly to the moon이다.( https://youtu.be/HsJavr4AI5M )
당장 달나라를 향해 날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감동이 달아나기 전에 얼른 차로 녹여 우려 마셔야겠다. 
이런 상황에 딱 맞는 차를 나는 어떻게 미리 알고 주문해 놓았을까.
녹차 베이스에 그랜드 베리와 바닐라로 향을 입히고 비밀스러운 향신료를 살짝 가미한 상큼 10단의 차.
이름마저 TWG 'Silver moon' 

Silver moon을 우리며 다른 버전의 Fly me to the moon을 유튜브에 쳐본다. 800개가 넘는다. 이렇게나 다양한 달나라 가는 법이 있다니.  

20년 전 서울 재즈 아카데미 다닐 때 나도 자주 연주한 곡이다. 연주할 때 리듬도 중요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역시 즉흥 부분이다. 같은 노래지만 매번 다른 연주가 되었다. 

오리지널 케이 벨러드의  Fly me to the moon은 3박자 왈츠 리듬인데  프랑크 시나트라가 스윙 리듬으로 변주해서 히트했다.  클레어 리틀리가 부르고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엔딩곡으로 나와 유명해진 Fly me to the moon은 음정이 불안한 매력이 있다. 달에 가는 길이 추워서 목소리가 떨리는 것처럼 순박한 맛이다. 줄리 런던의 것은 보사노바풍으로 바뀌었는데 어쩐지 유튜브 재생 속도 0.75×로 들으면 한결 좋다.
리듬과 색깔은 다 다르지만, 노래는 한결같다.
In other words to be true 
In other words I love you. 

Silver moon이 다 익었다.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결같이 맛있다.
상큼한 과일 향에 달콤하고 깨끗한 청량감.
어떻게 떫은 녹차로 이런 맛과 향을 낼 수 있을까? 

차에는 홍차와 녹차라는 큰 베이스가 있다. 거기에 다른 차를 품종을 섞기도 하고 과일이나 꽃, 초콜릿이나 견과류를 배합하고 바닐라 향, 카라멜 향을 입혀 수 백 가지의 새로운 차를 만들 수 있는데 이를 가향차라 부른다. 세상에 차 브랜드가 수없이 생겨날 수 있는 이유다. 자신만의 독특한 배합법으로 같은 차를 새롭게 해석하고 변주해서 새로운 멋과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과연 이 바닥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차 명가 '마리아주 프레르'의 형제들도 녹차와 홍차를 이렇게 저렇게 배합하고 꽃잎과 과일을 잘게 썰어 섞고 바닐라 향 따위를 뿌리다가 최고의 황금 비율을 찾아냈을 것이다. 티베트에서 가져온 이국적인 꽃을 넣었으니 차 이름을 '마르코폴로'라 지으면 신화가 완성된다. 

오스카 피터슨
오스카 피터슨

달나라 가는 차례가  오스카 피터슨으로 바뀌었다.
( https://youtu.be/ZlI6eFNemas )
이 사람은 아이가 소풍 가듯이 달에 가고 있다.  참 발랄한 발걸음에 한 줄로도 안가고 메이저, 마이너 지그재그로 간다. 가끔은 물웅덩이에 발을 첨벙이기도 하면서( 연주 중 캐럴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바야흐로 차도 음악도 변주의 시대이다.
오리지널의 대중성과 익숙함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해석과 표현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그래서 '영원'히 참맛으로 '회귀' 하는. 

이렇게 다양한 방식의 연주가 없었다면 몇 시간이나  Fly me to the moon을 듣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Fly me to the moon은 불안한 음정으로, 보사노바로, 어린아이의 천진함으로, 0.75로 자꾸 돌아온다. 

떫어서 잘 마시지 않던 녹차도 Silver moon으로 늘돌아오듯이.

beegie adair trio
beegie adair t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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