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황소'가 들여다보는 한 남자의 심연

장서희 승인 2021.02.26 09:44 | 최종 수정 2021.02.26 17:11 의견 0

영화 <성난 황소>는 이해하기 힘든 거친 남자 제이크 라모타가 빠져드는 심연을 탐색한다. 이 작품은 영화가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영화는 빈민가 출신 제이크가 복서로 성공하나 폭력에 심취해 광기에 휩싸이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뿐인 혈육인 동생 토미와도 의절하고 아내와도 헤어진다. 갱들의 승부조작 요구를 거절하면서 복서의 커리어도 끝장이 난다. 클럽을 오픈하며 제2의 인생을 도모하나 그마저도 평탄치 않다. 영화는 제이크가 실패하고 밑바닥으로 처박히는 과정을 처절할 정도로 자세히 묘사한다. 흑백영화인 이 영화에서 제이크의 성공 스토리는 몇 장의 스틸사진과 조악한 홈 무비의 컬러 화면으로만 묘사된다.

제이크가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 제이크를 담아내는 방식도 변화한다. 동생 토미의 도움으로 이제 막 복서로의 재능을 꽃피우며 아내 비키를 만나 행복해지기 시작하던 젊은 시절의 제이크는 열린 공간과 밝은 배경에 그림자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경기 장면 역시 단렌즈로 링의 깊은 공간감을 강조하며 제이크가 자유로운 공간에 위치해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제이크의 비뚤어진 성격이 드러나며 의처증과 자만심이 점점 솟구치면서 제이크의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종종 그를 좌지우지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갇혀있는 프레임을 보여준다. 

조명과 촬영은 점점 표현주의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고 극단적인 화면만큼이나 제이크와 인물들도 극단적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링에서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만 알고 있던 제이크에게 세상은 너무 복잡하였고, 세상이 제이크를 길들이려 할 때마다 이 야수는 올가미를 거부하며 폭주한다. 제이크가 점점 심연으로 빠지게 되면서 영화는 제이크의 주변이 왜곡되는 것을 보여준다. 아내와 동생 토미의 관계를 의심한 제이크는 토미의 집에 쳐들어가 그의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토미에게 주먹을 날린다. 카메라는 바닥에 쓰러진 둘을 따라 극단적인 로앵글로 전환되며 화면 거의 대부분을 바닥으로 채움으로써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제이크가 고의로 시합에서 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이크의 육체가 상대방의 펀치에 처절하게 찢겨나가는 것을 묘사한 이 장면은 그가 떨어진 심연의 밑바닥을 보여준다. 로프에 양팔을 기댄 채 쏟아지는 펀치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제이크. 이 상처받은 짐승은 이것을 자신의 속죄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경기가 중지된 뒤 로프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촬영한 클로즈업은 마치 이 컷을 위해 모든 장면이 깊은 심도로 촬영됐다고 느껴질 만큼 충격적인 시각 이미지를 선사한다. 

사랑하던 모든 이들을 자신의 잘못으로 잃은 제이크는 이제 비대해진 몸으로 손님들 앞에서 농담과 춤을 추며 자신의 클럽을 운영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미성년자를 고용한 문제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어 좁은 감옥 안에 갇힌 이 야수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면서 벽에 온 몸을 부딪히며 미친 듯이 울부짖는다. 어둠이 지배하는 이 공간에서 그는 이제야 잘못을 회개하며 빛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제 명성도 부도 모두 잃고서 이빨 빠진 야수가 된 그는 그제야 작지만 따스한 변화를 겪게 된다. 클럽에서 일하는 여가수를 걱정해주고 우연히 만난 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누구나 쉽게 가지지 못하는 인간의 따스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제이크의 복싱 커리어에 불운한 전환점을 가져온 승부조작은 법률이 금지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체육진흥법이라는 개별법에서 전문체육의 운동경기에 관해 승부조작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또한 법원은 해당 운동경기가 스포츠토토 발행 대상일 경우에는 승부조작이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보기도 한다. 승부를 조작하고, 승부가 조작된 경기에 대한 복권을 매수하여 그 환급금을 받아내는 것을 사기 행위로 보는 것이다. 그 기망행위의 상대방은 복권을 발매하는 스포츠토토이다. 스포츠토토로서는 승부가 조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복권을 발매하지 않았을 것이며, 착오에 빠져 승부를 조작한 자들에게 당첨금을 환급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시 ‘성난 황소’로 돌아가보자.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쇼에서 쓸 멘트를 준비하며 복싱 동작을 하는 제이크의 모습이 거울 반사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이 야수를 이해했는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오프닝으로 꼽히는 쉐도우복싱 시퀀스에서부터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출처=<성난 황소 Raging Bull>(1980)  감독 Martin Scorsese 제작 Robert Chartodd-Irwin Winkler Pri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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