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32편] 에베레스트 가는 길 ②

백민섭 승인 2021.07.22 11:19 | 최종 수정 2021.07.22 11:30 의견 0

10월. 이미 칭짱고원은 영하의 날씨다. 겹겹이 옷을 챙겨 입고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향해 길을 나선다.

318번 도로에 면한 빠이빠마을에서 약 5km 쯤 가면 검문소가 있다. 이 지역은 네팔, 인도, 파키스탄 국경지대로 가는 길목이라 검문이 까다롭다. 일일이 여권검사를 받아야 한다. 일일이 여권과 탑승자, 그리고 입장권을 대조해 보더니 통과시킨다.

드디어 거대한 산등성이를 향해 구절양장 같은 꼬부랑길을 오른다.

긴장되고 스릴 넘치는 고갯길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첩첩한 산들이 스멀스멀 나타나 초모랑마자연보호구의 광대한 산군(山群)이 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머리가 띵하고 속이 메슥거린다. 고소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 고통도 잠시 시선이 고갯마루 턱에 이르자 하늘로 붕 뜨는 듯한 희열이 엄습한다. 마침내 도착한 팡라고개(Pang la 또는 加吾拉, 5140m)전망대.

팡라고개(pang la, 5200m) 전망대에서 본 히말라야산맥
팡라고개(pang la, 5200m) 전망대에서 본 히말라야산맥

히말라야산맥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지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장대한 히말라야 산맥의 파노라마가 압도적이다. ‘억’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화창한 날씨에 나신을 드러낸 수많은 고봉들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땅은 황토 흙과 햇빛과 구름이 어울려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리고 있다.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 꽃에 감동하고, 남자는 설산에 감동한다고 했던가.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의 리드미컬한 연봉은 남자의 마음을 흔든다.

형형색색의 타루초와 돌탑 사이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거봉들. 초모랑마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칸첸중가(8586m)와 마칼루(8463m), 로체(8516m), 오른쪽으로 초오유(8201m), 치맛단처럼 연이은 봉우리들로 찬란하다. 너무나도 장쾌하고 아름다워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선택 받지 못하면 볼 수 없다는 초모랑마와 히말라야의 거봉들의 나신은 너무나 깨끗하고 눈이 부셔 보는 이가 부끄러울 정도다.

자우라(加吾拉)고개에 그려진 구절양장의 하행 길은 누장산 72고개보다 길고, 꼬부라지고 심오하다. 돌고 돌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꼬부랑길을 내려서니, 이제는 세월의 풍파에 스러진 토성이 한 역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것이 어느 시절 어떤 역사인지 모르지만, 오지 중에 오지라는 이곳에 그 옛날 역사(力事)를 이루었던 인간의 위대함에 그저 경이를 표할 뿐이다.

자우라(加吾拉)고개와 하말라야산맥
자우라(加吾拉)고개와 하말라야산맥

자우라고개를 내려서면 초모랑마를 가기 위해 여행객들이 꼭 거쳐 가는 전통 티베트인 거주지 타쉬좀(Tashi Dzom, 扎西宗乡)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교통 요지이다. 여기서 마칼루 베이스캠프, 초모랑마 베이스캠프(EBC-Everest Basecamp, 5200m)로 가는 길이 갈린다.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은 언제쯤 시작한 역사인지 헤아려봄직한 흙벽돌집들 몇 채가 아직도 건재하다.

타쉬좀(Tashi Dzom, 扎西宗乡)마을과 이정표
타쉬좀(Tashi Dzom, 扎西宗乡)마을과 이정표

타쉬좀에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까지는 롱뿌빙하에서 발원한 짜가취(扎嘎曲)강을 따라 약 45km를 더 가야한다. 마을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5km쯤 가자 초모랑마 입장권을 확인하는 '초모랑마자연보호구' 통제소가 있다.

법대로 한다는 뜻의 의법치변(依法治邊)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아치구조물과 흰색 건물 한 동이 길을 지키고 있다. 모든 차량들을 일일이 검문 검색한다. 여행허가서와 여권은 필수서류다.

중국의 검문소를 만나면 잘못한 일도 없는데도 도둑이 오금 저리듯이 언제나 콩닥콩닥 거린다.

여기서부터는 제한된 차량 이외에는 일체 출입이 안 되는 통제지역이다.

티베트쪽 에베레스트 지역은 중국 국가자연보호구역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 받는 곳이다. 대부분의 일반여행객들은 인원이 꽉 차야만 출발하는 상업용 지프차나 마차를 타고 베이스캠프로 이동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특별한 탐사대라는 이유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까지 진입을 허가했다. 중국 감독관의 역할이 컸다.

초모랑마(에베레스트) 가는 길
초모랑마(에베레스트) 가는 길

차량은 계곡 비탈에 낸 길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초모랑마로 향한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씩씩거리며 오르는 외국인과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중국의 젊은 친구들의 당찬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탐사차량이 초모랑마자연보호구에 들어서자, 히말라야의 고산지대라고는 믿기 어려운 초원이 펼쳐지고 바닥을 드러낸 강바닥 길을 지그재그로 피하며 고도를 높인다. 초모랑마의 빙하 중 가장 거대한 롱뿌빙하 하류를 지난다. 길이가 20킬로미터가 넘고 너비가 1.4킬로미터에 이르는 롱뿌빙하는 여름에는 만년설이 녹아 강이 되는 곳이지만 겨울 초입에 들어선 지금 실개천 하나만을 남겨 두었다. 곡절 끝에 드디어 베이스캠프가 멀리 보이는 롱뿌사원에 도착한다.

가장먼저 반기는 사람들은 장사꾼들이다. 팔에 잔뜩 걸친 호박 팔찌와 현지에서 채취했다는 제법 모양이 있는 암모나이트 등 히말라야지역에서 나는 화석 파편들을 보여주며 흥정을 붙인다. 마차꾼들도 우리일행을 유치하려고 눈치 살피기에 바쁘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이 오지에서 남루한 원주민들을 보니 애처롭기보다 반가움이 앞선다. 역시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롱뿌사원 앞은 흥정의 열기로 뜨겁다.

초모랑마 북쪽 산기슭 비탈진 곳에 위치한 롱뿌사원(絨布寺)은, 해발 5,03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사찰이다. 비구니 사원 1개, 본사와 8개의 말사로 구성되어 있는 규모 있는 사원이다. 원래는 닝마파(紅帽派-라마교의 구파(舊派)인 홍교(紅敎)의 교파)의 사원으로 16세기경 축조됐지만 소실되고, 1902년에 중건된 사찰로 한때는 500 여명의 승려가 있었던 사원이다. 한때는 일대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지금은 라마승과 비구승을 합쳐 수십 명이 사원을 지키고 있다.

1983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해 사원 내 숙박이 가능하고 작은 상점과 식당이 있어서 여행객이나 등산객들이 이용할 수 있다.

사원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초모랑마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모습이지만 초겨울이라 히말라야의 세찬 바람처럼 스산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우체국도 문을 닫아 기념엽서를 보내려 했던 바람도 물거품이 됐다.

롱뿌사원 전경
롱뿌사원 전경

롱뿌사원에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까지는 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걸어서는 약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보고 싶었으나 간헐적으로 불어 온 히말라야의 강풍을 맛본 다음에는 생각이 싹 달라졌다. 중앙정부에서 나온 감독관의 주선으로 지프차를 타고 베이스캠프에 올라가는 진기록을 세운다.

롱뿌사원에서 본 초모랑마와 롱뿌계곡
롱뿌사원에서 본 초모랑마와 롱뿌계곡

베이스캠프의 천막들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와 손을 흔들어준다. 느닷없는 차량의 출현이 이채로웠던 모양이다.

베이스캠프(珠峰大本营)구역에는 길 좌우로 텐트가 장사진이지만 초모랑마 등반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 산악인들이 사용하는 베이스캠프는 아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임시거처다. 천막으로 만든 게스트 하우스 내부는 티베트식으로 단아하게 꾸며져 있다. 단체 관광객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수십 개가 성업 중이다. 찻집, 기념품가게도 있다. 이 높은 곳에도 사람들은 참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초모랑마(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珠峰大本营)
초모랑마(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珠峰大本营)

하절기에는 베이스캠프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뷰포인트인 언덕에 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빙하가 녹아서 만든 하천의 물살이 세고 깊다. 경운기 등으로 그 사이를 넘겨주는 상인도 있다.

입구부터 진을 친 호객꾼을 헤치고 가장 전망 좋은 언덕으로 오른다. 급경사를 50여 미터 오르자 훅하고 밀려드는 바람과 한기가 세차다. 전망대 꼭대기에는 몇 개의 돌무덤과 타루초, '초모랑마자연보호구'라는 돌비석이 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사람이 밀리거나 잔돌이 날아다닐 정도다. 눈을 들어보니 장대한 초모랑마가 위압적으로 눈앞에 서있다. 숨이 콱 막히는 감동이다.

해가 기울면서 기상이 나빠진 초모랑마에 짙은 구름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어렵사리 만나러 온 우리에게 초모랑마는 부끄러운 듯 자태를 감추기 시작한다. 찬바람에 곱은 손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일진광풍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끝내 두터운 구름을 벗겨낼 수 없었다. 100여 킬로미터 산길과 고산증을 참고 참으며 이곳까지 온 것은 초모랑마를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여신은 아주 짧은 만남을 허용했지만 그의 찬란한 자태를 보는 순간만큼은 눈물겹도록 행복하였다.

인간과 자연이 만났을 때 극치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낀 한순간. 오, 초모랑마여!

초모랑마(에베레스트)와 롱뿌빙하 전경-(출처:중국국제방송국 CRI ON LINE)
초모랑마(에베레스트)와 롱뿌빙하 전경-(출처:중국국제방송국 CRI ON LINE)

* 2019년 4월 중국 인민망(人民网)에 따르면 중국정부가 초모랑마자연보호구의 생태 환경 보호를 위해 2019년부터 일반 여행객들의 초모랑마 베이스캠프 (EBC) 방문을 금지하고 롱뿌사(絨布寺)까지로 관광지역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2018년 보호구를 재정비하면서 롱뿌사에서부터 초모랑마까지의 20km에 이르는 지역을 핵심지역으로 지정하고 출입을 제한한 것이다. 이 조치에 따라 롱뿌사와 베이스캠프 구간에 있던 텐트촌과 셔틀버스 정류장이 롱뿌사 아래로 이동 설치되었다. 앞으로는 롱뿌사에서 초모랑마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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