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티베트 33편] 새야, 너는 아니? 끝 모를 미지의 세계를

백민섭 승인 2021.08.03 13:01 | 최종 수정 2021.08.03 13:09 의견 0
아리 가는 길에서 본 히말라야산맥
아리 가는 길에서 본 히말라야산맥

아리(阿里)루트는 티베트 여행 루트 중에서도 험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나 모험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어야 한다.

모험이란 낯선 곳에 나를 밀어 넣는 것.

길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곳.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신비로움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주 적당한 곳이다.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초모랑마를 벗어나 219번 도로인 신짱꽁루(新藏公路 : 新彊省 ⇔ 葉城 ⇔ 普蘭 구간)를 타기 위해서는 라체(拉孜)로 되짚어 나와야 한다. 아리(阿里) 및 네팔로 가는 차량은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318번 국도(友情公路)와 219번 국도(新藏公路)의 라체 분기점. 오른쪽으로 가면 아리 가는 방향
318번 국도(友情公路)와 219번 국도(新藏公路)의 라체 분기점. 오른쪽으로 가면 아리 가는 방향

중국의 지형은 서고동저(西高東低). 서쪽에 있는 티베트 가는 길은 갈수록 오르막길이다. 

아리(阿里, 또는 Ngari)는 평균해발 고도가 4300미터에 이르러 티베트에서도 가장 높은 땅이자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신비로운 곳을 찾아 생고생을 작정하고 나선 이들에게는 적당한 곳이다.

아리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 군데가 있다. 짜다현(札達縣)의 구게왕국(古格王國)과 푸란(普蘭)의 신산(神山) 카일라스, 성호(聖湖) 마나사로바다.

아리사람들에 의하면 '짜다와 푸란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리를 와 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탐사대는 죽어라하고 아리로 간다.

단층의 토담집이 양 옆으로 십 여 채 늘어선 것이 전부라서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중빠(仲巴)에서 하룻밤을 묵고 푸란(普兰)을 향한다. 아침 7시30분이지만 베이징표준시를 기준으로 하면 2시간 쯤 이른 시간이다. 여명이 남아 있는 시간, 문을 연 식당이 없어 아침을 거른다. 지난밤도 우리나라 시골 여인숙 같은 초대소에서 겨우 새우잠을 잤다. 이런 식의 홀대가 사흘째다. 라싸 이후 호텔 예약과 식사가 제대로 이행되는 곳이 별로 없었다. 생각 밖으로 열악하고 조악한 대우에 비해 비용은 오지의 독보적인 입장 때문인지 결코 싸지도 않다. 사흘째 목욕은 물론 세면조차 곤란한 초대소에서 지내 온 터라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푸란 가는 길 역시 쉽지 않다. 오르면 오를수록 운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해발고도는 점점 높아져 4500미터에 이른다.

강한 자외선을 동반한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히터를 틀어 놓은 상태라 자꾸 졸음이 온다. 연일 혹독한 일정으로 지친 운전자들은 저마다의 비법으로 졸음을 쫓기에 난리가 났다. 메이저리그 선수처럼 입안에 한 움큼 넣은 해바라기 씨를 능숙하게 까먹으며 부지런히 푸란으로 간다.

아리지역의 219번 국도
아리지역의 219번 국도

중빠에서 약 170여 킬로미터를 달려 티베트의 시가체와 아리를 가르는 다리 마요교(马攸桥)를 지나 아리(阿里)지역으로 들어선다.

남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사이에 두고 네팔, 인도와 이웃하고,

북쪽으로는 쿤룬산맥(崑崙山脈)을 넘어 신장(新疆)지역으로 통한다. 이렇다보니 공안들의 검문도 점점 까다로워진다. 국경이 인접한 지역으로 대부분이 군사보호지역이다.

군사보호지역? 이젠 군사보호지역이라는 말도 익숙해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북부지역에 휴전선이 있으니까 대전쯤부터 군사보호지역이라는 식이다. 문제는 그렇게 황당하게 겁을 줘놓고 그걸 곧이곧대로 지키는 것이다. 보통 250킬로미터 촬영금지, 어떤 때는 600킬로미터 촬영금지다. 비포장 산길을 수 백 킬로미터나 통제를 해버리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소변을 보는 것도 허락 받지 않고 정차했다고 싸운 적이 있다. 군사보호지역이라 차에서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 감독관과 우리 사이에 적잖은 앙금이 쌓여 있다.

마요물라산(馬攸木拉山) 고개
마요물라산(馬攸木拉山) 고개

얄룽장뿌강과 갠지스강의 근원인 마췐하(馬泉河)를 거슬러 서쪽으로 달리다보니 해발 5216미터 마요물라산(馬攸木拉山)이 보인다. 본격적으로 아리의 오지에 접어 든 것이다. 오른쪽으로 강디스산맥이 길게 뻗어 있지만 대부분은 야트막한 구릉과 초원이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원에서 보는 이채로운 광경이다. 노랗게 물든 초원지대에는 유목민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점처럼 보이고, 십여 호쯤 되는 원주민 정착마을이 드문드문 보인다. 여느 티베트 부락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신축한 토담집이 많고 ‘교육(敎育)’을 강조하는 표어들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어 이 황량한 곳까지 미치는 중국정부의 강력한 동화정책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개량된 티베트인 정착촌
개량된 티베트인 정착촌

시원스럽게 포장된 도로는 널찍하고 평탄하다.

햇살은 강렬하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느슨함은 또 다시 졸음이라는 적이 되어 탐사대를 공격한다. 설상가상 이번에도 후미차량에 이상이 생겼다. 어디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연료탱크에 균열이 생겼다. 심하지는 않지만 기름이 새고 있어 여차하면 차량자체를 돌려보내야 할 상황. 인근 도시가 사방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어서 차량이 멈춰 선다면 탐사는 그것으로 끝이다. 달리 방도가 없어 기름이 새는 만큼 예비연료로 보충하면서 가기로 한다. 중국 감독관과 상의한 끝에 코스를 조금 바꿔 마을을 찾아 나섰다. 겨우 찾은 마을이 훠얼향(霍尔乡). 마치 사막 한가운데 허름한 선술집들이 한두 채 있는 모습이 첫인상이 된다. 바람 불어 먼지 자욱한 길가에 동네 사내들이 포켓볼을 치거나 장기를 두고 있다. 이런 두메산골 오지 마을에 연료탱크의 균열을 고칠 수 있는 카센터가 있을 리 없다. 할 수 없이 균열부위를 접착제로 임시조치하고 기름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다음 목적지까지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탐사대를 안내하는 중국 관리가 군부대에 통사정을 해서 얼마간의 유류를 얻어 주고 다음 경유지인 푸란공안국에 연락하여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여곡절을 안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린다.

훠얼향(霍尔乡)지나 20여 킬로미터를 달리자 신산(神山) 카일라스와 성호(聖湖) 마나사로바가 희미하게 보인다. 날이 저물기 시작해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여유가 없다. 해 떨어지기 전에 산길을 벗어나야 한다.

오랜만에 보는 주유소를 반가워할 사이도 없이 올드 바가(巴嘎, Baga) 삼거리에 이른다.

쓰러질듯 한 이정표에서 목적지를 확인하고 신짱꽁루(新藏公路-219번 국도)에서 벗어나 207번 지방도로를 타고 푸란으로 향한다. 마나사로바호수와 락샤스 탈호수 사이로 난 지방도로로 끝에 푸란(普兰县)이 있다.

푸란은 히말라야 산맥 북쪽에 위치한 산악도시. 중국과 인도, 네팔 3개국의 경계선상에 있는 도시로 계곡 사이에 길게 뻗어있다. 예로부터 티베트 서부의 대외무역을 담당하던 중요한 교역로이자 한때는 구게왕국의 영토였다. 지금도 네팔이나 인도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제1급 관문이다. 오래전부터 외국순례자와 상인들이 이 푸란을 통했고,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의 주요국제통로로 역할을 하고 있다.

신산(神山) ‘카일라스(Kailas, 6714m-또는 수미산 須彌山)’와 성호(聖湖) ‘마나사로바(瑪旁雍錯, Manasarovar Lake)’가 있어 특히 인도의 순례자와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도시이기도 하다.

밤길을 달려 푸란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해는 져서 캄캄한데 길은 급경사요 노면은 온통 자갈밭이다. 이미 여러 차례 돌과 흙더미에 부딪혀 고생한 경험때문에 한껏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연료탱크에 금이 간 차를 천신만고 끝에 겨우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아무리 둘러봐도 사위에 빛 한 점 없는 비탈길을 얇은 얼음을 밟듯 살금살금, 아슬아슬 내려간다. 그렇게 50여 킬로미터를 달려 도착한 푸란. 물이 말라 바닥을 허옇게 드러낸 마쟈장뿌(马甲藏布-孔雀河라고도 하는데 인도양으로 흘러간다)를 건너 바로 시내로 진입한다. 흰 두건을 두른 듯 히말라야 산맥의 영봉만이 새벽 달빛에 살짝 얼굴을 드러냈을 뿐, 푸란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동도 없이 우리를 맞이한다.

하루 종일을 험하디 험한 길을 달려 도착한 푸란은 너무 초라하고 형편없었다.

히말라야 산맥 바로 밑에 위치한 푸란호텔이 가장 묵을만한 곳이라 했지만 난방도 시원찮고, 화장실은 물론 세면장도 없어 보온병의 뜨거운 물로 겨우 몸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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