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든링이나 엘든링이나 그런 엘든링 이야기 III

Story Fades Edition ? 게임이 내러티브를 성공적으로 들려주는 사례

이현수 승인 2021.12.13 11:13 | 최종 수정 2021.12.13 11:22 의견 0

자, 오늘은 비디오 게임이 어떻게 내러티브를 풀어내려다 실패했는지, 무작정 영화를 따라하려던 게임들이 어떻게 영화의 내러티브, 게임의 모험하는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놓쳤는지, 그리고 프롬 소프트웨어와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게임이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 살펴보도록 합니다.

자, 당신이 최신 AAA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쳐 게임을 하나 샀다고 치자. 굉장히 매력적인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게임이다. 인류가 멸망한 뒤 기계 생명체들이 지구를 지배한 상황에서 활과 화살만 가지고 기계 생명체들을 사냥하러 다녀야 한다거나, 대이주 시기 부족을 이끌고 성공적으로 잉글랜드 정복에 나서야 하는 바이킹 수장이 된다거나,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 좀비들과 미친 인간들 사이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총알과 연료를 찾아야 하는 전직 오토바이 폭주족 리더가 된다거나, 역시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 물자도 총기도 없는 상황에서 야구빠따에 못을 박아서 좀비 대가리를 후두려 패고 건물 사이를 파쿠르해 다니며 하루하루 생존해야한다거나. 디자이너들이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 놓은 생생한 그래픽과 상호 작용 오브젝트가 가득한 세상이 당신 앞에 펼쳐져 있다. 자, 가서 기계생명체 좀 사냥하고 그 부품들 모아 무기도 업그레이드하고, 잉글랜드 놈들 뚝배기도 좀 깨고 수도원도 좀 약탈하면서 바이킹들의 정착지 생활도 좀 풍족하게 하고, 좀비 대가리에 샷건을 뚜샤박아넣었으니 샷건 총알 보충하기 위해 오토바이 타고 부다다다 달려가 빈 무기점도 좀 뒤져보고, 건물 옥상에서 건너편 건물 베란다로 점프해 들어간 뒤 도끼 하나 집어서 좀비 대가리를 반토막 낸 뒤 날이 나가버린 도끼 대신 다른 날붙이를 찾아 좀비 무리 사이를 슬라이딩해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재미 좀 보려 하는데 ... 갑자기 게임이 준비한 장대한 스토리가 플레이의 발목을 잡는다. 자, 우리 게임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게임이야. 일단 배경 지식으로 이거이거를 알아야 하고, 네 목표는 앞으로 이러이러한 복잡한 여정을 가는 거야.

영화라면 관객들이 얌전히 앉아서 틀어주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아무리 복잡한 이야기라도 소화 가능하다. 하지만 게임은? 자 앉아봐라 이제 개 쩌는 이야기를 들려주마 ... 오 저거 기계 코뿔소인가? 쩐다. 저거 잡으러 가야지. 아니 앉아보라고. 네가 꼭 알아야 할 이야기가 ... 오, 잉글랜드 군대다. 양 손에 도끼 들고 뛰어들어가 모조리 뚝배기를 깨줘야지. 아니, 앉아보라고, 네가 꼭 알아야 할 이야기가 ... 헤헷, 좀비떼다. 기관총 들고 수류탄 들고 파티 타임! 아니 ... 앉아봐, 일단 이야기를 알아야 ... 궨트할 줄 아나? 아 .... 이 ADHD 걸린 새끼원숭이보다 더 산만한 이 게임 플레이어 새끼들한테 우리 작가들이 쓴 이 개 쩌는 게임 스토리를 어떻게 전달하나 ... 그래서 나온 것이.

스토리 진행에 관한 모든 것들을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 게임 문서, 음성 파일, 비디오 파일, 시네마틱 컷신 등등에 쑤셔넣고 스토리를 이해하고 싶으면 이걸 다 읽어보고 들어보고 지켜보라고 하는 것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 Horizon Zero Dawn’ (2017, 게릴라 게임즈 Guerilla Games, SIE, 마테이스 드 존지 Mathijs de Jonge)에 들어있는 텍스트와 음성들. ‘프로젝트 제로 던’이 무엇인지, 도대체 캐릭터들이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인지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저 내용들을 찬찬히 읽어보아야 한다.

‘메탈 기어 솔리드 5: 더 팬텀 페인 Metal Gear Solid V: The Phantom Pain’ (2015, 코나미 Konami, 코지마 히데오 Kojima Hideo)에 등장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카세트 테이프 녹음물들.

엄청난 양의 비디오 컷신이 삽입된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2020, 코지마 프로덕션 Kojima Production, SIE, 코지마 히데오) 무려 5시간이 넘는 컷신이 삽입되어있다. 게임은 미친 듯 재미있지만 컷신은 미친 듯 지루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게임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과 내러티브가 주는 가장 강한 충격은 컷신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에서 나온다. 그럼 컷신이 왜 5시간이 넘게 필요한 것인가?

잠시 시간을 뒤로 돌려보자.

‘이코 Ico’ (2001, 팀 이코 Team Ico, SIE 재팬 스튜디오 SIE Japan Studio, 우에다 후미토  Ueda Fumito)
‘이코 Ico’ (2001, 팀 이코 Team Ico, SIE 재팬 스튜디오 SIE Japan Studio, 우에다 후미토 Ueda Fumito)

2001년 ‘이코’라는 제목의 게임이 출시된다. 뿔이 난 채 태어나 마녀의 성에 제물로 바쳐진 소년 이코. 성을 탈출하던 이코는 요르다라는 소녀를 만나고 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며 마녀의 성을 함께 탈출한다. 이 게임은 게임 내 텍스트, 스토리 시네마틱 컷신 하나 없고 심지어 대사도 한 마디 없다. (요르다가 말을 하기는 하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고 자막도 상형 문자로 나온다. 2회차 플레이부터 자막이 인간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바뀌고 그 의미가 드러난다.) 제작진은 철저하게 플레이어의 상상력으로 스토리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게임의 많은 곳을 비워두었고 미술과 음악, 게임 플레이까지 그 목적에 맞추어 방향성을 잡아 제작하였다. ‘이코’에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류를 한 번 멸망시켰다가 다시 부활시켜 문명을 쌓아가게 만들며 이 인류 재건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수 만년 뒤의 자신의 복제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세상 곳곳에 숨겨놓지도’ 않았고 ‘IAEA의 눈을 피해 핵폭탄을 빼돌리고 기존의 위선적인 국가체계를 부정하며 자신들의 낙원을 설립하려고 하는 전쟁 엘리트들과 그걸 막으려는 백전노장 슈퍼 솔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철학적 정치적 논쟁’도 없지만 ‘이코’가 주는 내러티브의 깊이와 울림은 그 어떤 게임보다 엄청나다. 게임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게임만이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코’는 ‘손을 잡는다’라는 행위를 버튼에 할당하여 플레이어-이코가 요르다의 손을 잡고 놓는 행위만으로도 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는 이들의 차기작 ‘완다와 거상 Shadow of the Colossus’ (2005, 팀 이코, SIE 재팬 스튜디오, 우에다 후미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게임 플레이의 핵심이 되는 ‘쥐어 잡는다’라는 행위를 엔딩에서 엄청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장치로 사용한다. 영화가 문학을 모벙하려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쭈글거리고 있을 때, 수많은 재능 있는 초기 감독들이 영화만의 특징, 영상의 문법을 써나가며 영화는 문학이 아닌 연극이 아닌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게임이 영화를 어줍잖게 모방하고 지금도 모방만 하는 와중, ‘이코’는 게임이 왜 문학이 영화가 연극이 아닌 게임인지를 보여준 가장 모범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친구네 집에서 ‘이코’를 플레이해본 청년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회사를 그만 두고 게임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 ... 드디어 프롬 소프트와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온 힘을 쏟아 회심의 작품을 만들어내니 바로 ‘다크소울 Dark Souls’ (2011, 프롬 소프트, 반다이남코 Bandai Namco, 미야자키 히데타카)이다. (‘다크 소울’ 이전, ‘다크 소울’과 ‘데몬즈 소울 Demon’s Souls’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을 참조바람.) 게임을 켜면, 다소 난해한 나레이션이 깔린 시네마틱 컷신이 재생된다.

‘머나먼 고대, 안개로 뒤덮힌 세상은 아직 나누어지지 않았고 잿빛 바위와 거목과 고룡만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최초의 불꽃이 일어나 세상이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열과 냉기, 삶과 죽음, 그리고 빛과 어둠. 어둠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불꽃에 이끌려 왕의 소울을 찾아냈다. 최초의 사자(죽은 자) 니토, 아자리스의 마녀와 혼돈의 딸들, 태양빛의 왕 그윈과 그의 기사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난쟁이. 그들은 왕의 힘을 얻어 고룡에게 도전하였다. 그윈의 번개가 바위처럼 단단한 비늘을 궤뚫고, 마녀의 화염은 폭풍이 되었으며, 니토는 죽음의 장기를 개방하였다. 그리고 비늘없는 백룡 시스의 배신으로 결국 고룡은 패배하였다. 이것이 불꽃의 시대의 시작이다. 하지만 결국 불꼿은 사라지고 어둠만 남을 것이다. 이미 불은 꺼져가고 있으며 인간 세상에는 밤이 계속되고 인간들 사이에서 저주받은 다크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크 소울’ 세계관을 설명해주는 영상인데 짧지만 굵은 영상이 끝나면 게임이 시작된다. 저주받은 다크링으로 인해 죽음에서 깨어난 망자 주인공,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방패 (선택 클래스에 따라 장비가 다르긴 하다만 일단 칼이랑 방패로 퉁치자). 걸어가면 길 위에 적힌 튜토리얼, ‘이건 칼이야. 적을 찌르거나 베어. 이건 방패야. 적의 공격을 막아. 자 됐지? 아 저기 저건 적이야. 이제 네가 죽거나 쟤가 죽거나 결론 날 때까지 싸워.’ 그렇게 투닥투닥 적들을 죽이고 나아가면 ‘뭐야, 무지하게 어려운 게임이라더니 별 거 아니구만.’ 생각이 들게 되는데 이 때 게임은 우리에게 첫 보스를 대령해준다. 그리고 ... 현재 플레이어의 스탯으로는 절대 이 보스를 이길 수 없다.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시에 말이다. 1000시간씩 해서 맨 손에 빤스 한 장 걸치고도 마지막 보스를 잡는 그런 미친 고인물 망자들 말고.) 단 칼에 아작나고 그 유명한 ‘You Died’ 메시지 한 번 보면 ‘아, 진행상 패배하는 보스구나. 그럼 이제 진짜 게임 시작점으로 가겠군 ...’ 생각하게되는데, 아니, 처음 게임 시작했던 거기서 다시 시작이네. 그리고 첨언하자면, ‘다크소울’ 게임에서 죽으면 다시 살아나서 재도전하는 시스템까지 ‘게임적 허용’이 아닌 내러티브의 일부로 삼았다. 여기서 플레이어-주인공이 죽으면 진짜로 죽은 것이다. 다만 주인공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불사자 Undead’이기에 잠시 후 다시 일어나는 것 뿐이다. 여하튼 게임 시작점에서 다시 일어선 플레이어는 다시 적들을 썰어가며 진행하고 아까 날 죽인 보스와 또 마주치게 된다. 플레이어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까? ‘도망가자.’ 그렇다. ‘도망’은 ‘다크소울’의 가장 큰 주축 플레이 방법 중 하나이고, 이 이야기는 ‘싸워서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남는’ 이야기라는 것을 대사, 컷신, 텍스트 하나 없이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주입시켜준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이며 살아있다면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마치 위대한 자들이 태초의 불꽃을 다 갈라 가지고 간 뒤 남은 잿속의 아주 작은 불꽃을 가지고 살아남은 난쟁이처럼, 그 난쟁이의 후손인 우리 인간은 일단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비록 치명적인 다크소울을 가지고 있어 죽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죽어가는 한 인물이 나타나 우리에게 게임의 목적을 알려준다. ‘꺼져가는 불을 다시 지피기 위해 위대한 왕 그윈이 스스로 장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윈이 계승한 불도 꺼져가고 있다. 누군가 그를 대신해 불을 계승해 다시 불꽃을 피워야 한다.’ 음 ... 그러니까 세상을 살리기 위해 플레이어는 멀고 먼 길을 떠나 스스로 장작이 되어 불을 지피고 세상을 다시 구해야 한다는 거구만.

‘다크소울’은 게임이 가진 모든 것을 내러티브 전달에 사용한다. 분위기, 미술, 플레이 경험, 음악, 사운드, 조작 방식. 그리고 억지로 읽을 것을 강요하는 텍스트, 강제로 진행되는 시네마틱 컷신은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이 지옥같은 첫 지역을 벗어나 도착하게 되는 곳이 바로 모든 전설이 시작되는 ‘계승의 제사장 Firelink Shrine’이다. 마치 베이스 캠프와도 같은 디자인, 복잡미묘한 향수어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그리고 가운데서 타고 있는 화톳불. 모든 시청각적 구성 요소들은 바로 이곳이 이 세계에서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휴식처이자 집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정말 재수가 없다면 이 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 세상의 끝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게임이 주는 최고의 재미는 바로 ‘모험’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한 적 있다. ‘다크소울’은 바로 그 모험의 느낌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게임이다. 어디든 갈 수 있도록 교묘하게 연결된 길들, 그 사이사이 새로운 길을 뚫어주는 숏컷, 잘못 들어선 길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들어선 길 끝에서 다시 ‘계승의 제사장’을 만났을 때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그 안도감. 모든 지역과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크소울’의 레벨 디자인은 그 어떤 게임도 아직까지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다크소울’의 후속편들조차.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이 레벨 디자인답게 ‘다크소울’은 플레이어들마다 각자 다른 내러티브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주변 경치를, 적들의 모습을, 사운드를, 등장 캐릭터들과의 대화를 주의 깊게 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더 깊이 알 수 있고 모르면 그냥 모르는 대로 진행할 수도 있다. 아주 극단적으로 스토리? 그게 뭔가요? 우걱우걱 얼른 더 좋은 장비 맞춰서 푹푹 칼질하고 다녀야지, 라는 내러티브로 게임을 진행하고 끝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크소울’이 텍스트와 같은 요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크소울’은 아이템 설명란에 내러티브에 관한 정보를 흩뿌려 놓고 있다. 찔끔찔끔 정보를 풀어내고 그 간극은 플레이어가 상상으로 메꾸다가 그 간극의 정보를 담은 아이템을 찾게 되면 내러티브가 하나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때 플레이어의 상상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거나 아니면 상상과는 다른 현실을 이야기해주며 플레이어가 역동적인 내레이션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러한 간접적인 환경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의 예시를 두 가지 들어보자.

‘다크소울’은 무너지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기에 세계의 시공간이 뒤얽혀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한 공간이 동시에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기도 한다. ‘다크소울’은 이 설정을 멀티플레이의 동기화에 사용한다. 즉 뒤엉킨 시공간이 만날 때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주가 되는 플레이어는 시공간의 주인이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영혼 상태로 주인의 세계에 침공해서 주인을 죽일 수도 반대로 주인을 지켜주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싱글 스토리 플레이 중에 우리는 수많은 NPC 캐릭터 (NPC: None Playable Character. 플레이어가 움직이지 않는 인공지능 캐릭터들. NPC 캐릭터라는 말 자체가 역전앞이지만 NPC라는 단어에 익숙치 않으신 분들도 계시니 뒤에 굳이 캐릭터라는 단어를 붙였다.)들을 영혼 상태로 소환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만일 보스가 너무 힘들다면 플레이어는 ‘인간성’이라는 아이템을 사용하여 망자에서 인간으로 돌아와 보스방 앞의 소환 사인을 이용해 자신을 도와줄 NPC 캐릭터들을 소환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보스에서 어느 NPC가 소환되느냐가 게임의 전체 스토리를 알려주는 큰 힌트가 되기도 한다. 게임에서 스토리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센의 고성’에서 플레이어는 이 성을 지키는 거대한 아이언 골렘과 싸우게 된다. 그리고 이 보스전에서 플레이어는 ‘흑철의 타르커스 Black Iron Tarkus’라는 캐릭터를 소환해 함게 사울 수 있다. 아이언 골렘을 물리치면 플레이어는 게임의 후반부의 무대가 되는 거대한 도시 ‘아노르 론도 Anor Rondo’에 도착하게 된다. 아노르 론도의 성 안을 모험하다보면 플레이어는 어느 보물 상자에서 ‘흑철의 타르커스’가 입었던 장비 세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 보물 상자가 놓인 방의 주변 환경과 연관지어본다면 그 인물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흑철의 타르커스’ 정말 딴딴해 보이는 친구이다.

외모만큼이나 강력해서 아이언 골렘전에서는 타르커스를 소환하고 뒤에서 타르커스랑 아이언골렘이 싸우는 걸 지켜보는 것은 일종의 전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인물. 태양만세! ‘아스토라의 솔라 Solaire of Astora’

‘아스토라의 솔라’ ‘다크소울’ 시리즈 사상 최고 인기 캐릭터이다. 주인공조차 ‘지나가는 망자1’ 취급인 ‘다크소울’ 시리즈에서 이 캐릭터 역시 수많은 조연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 독특한 캐릭터성과 낙천적인 성격, 매력적인 인간됨됨이로 인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시리즈의 상징이 되어버린 캐릭터이다. 개발자들도 이 친구가 이렇게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

그는 태양을 숭배하는 기사이고 자신만의 태양을 찾아 이 무너져가는 세계까지 왔다.

솔라의 시그니처 포즈, 일명 ‘태양 만세! Praise the Sun!’ 저 독특한 포즈가 독특한 솔라의 성격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그야말로 폭발했고 인터넷은 저 ‘태양 만세!’ 밈으로 도배가 되었다.

여하튼 솔라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진행 초기에 솔라를 만나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자신만의 태양을 찾는다는 이 친구는 어딘가 제 정신은 아닌 거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엄청 호감을 주는 남자이다. 언제든 필요할 때 힘을 빌려주겠다고 말하는 솔라. 이후 힘든 보스전에서 솔라를 소환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여행길에서 몇 번 마주치게도 되는데 태양을 찾지 못해 점점 초조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 ... 이하 솔라 스토리의 스포일러.

플레이어가 어느 길로 게임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솔라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첫째, 그냥 쭉 주어진 길을 따라 게임을 진행할 경우, 어느 순간부터 솔라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혼돈의 마녀들이 살고 있고 고대에 데몬들이 만들어졌던 지옥과도 같은 밑바닥에서 플레이어는 솔라를 다시 만나게 된다. ‘태양충’이라는 빛을 내는 벌레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자신이 바로 태양이라며 이성을 잃고 망자가 되어 날뛰는 솔라를 말이다. 플레이어는 안타깝지만 자신의 손으로 솔라에게 영원한 휴식을 선사해야 한다. 솔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해 슬퍼하며 그렇게 소멸되고 만다.

그러나, 만일, 플레이어가 지름길을 이용해 솔라보다 먼저 이 지역으로 내려와 태양충을 죽여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지역을 진행하고 다시 돌아오면 어둠 속에서 솔라가 주저앉아 한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찾아도 태양이 없다고 마음이 꺾여버린 솔라. 말을 걸어도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마음이 꺾인 채 폐인이 된 솔라의 모습이 뭔가 씁쓸하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며 플레이어는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솔라를 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실제 솔라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긴 모험의 끝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태초의 화로에 이르게 된다.

위대한 태양빛의 왕 그윈이 자신의 몸을 장작으로 바쳐 불을 되살린 태초의 화로. 그때 일어난 엄청난 불길이 모든 것을 태우고 재만 남은 곳이다. 무채색의 색감, 서걱거리는 재의 질감, 세상의 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공허한 앰비언스 사운드, 그 공허함 속에서 더 크게 들리는 갑옷과 칼이 철컹거리며 부딪히는 소리. 정말 여정의 끝이자 세상의 끝이라는 것을 잘 표현해 놓은 이 장소는 점점 앞으로 갈수록 외롭고, 허무한 감정이 밀려오게 설계되어 있다. 그윈의 충직한 기사단, 원래는 은기사였으나 태초의 화로가 불타면서 검게 타버린 흑기사들을 물리치고 도달한 끝, 태초의 화로 앞에서 플레이어는 보게 된다. 찬란히 빛나는 솔라의 소환 사인을. 그리고 사인을 만지면 솔라가 환한 태양빛 아래 ‘태양만세’ 포즈를 취하며 소환된다.

태양을 찾지 못해 마음이 꺾인 줄 알았던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세계에서 플레이어보다 먼저 태초의 화로에 도착해 불을 계승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뒤에, 다른 세계에서 불을 계승하러 오는 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의 소환 사인을 남겨두었던 것이다. 미사여구로 빛나는 텍스트도, 화려한 시네마틱 컷신도 없지만 게임 시스템만으로 표현된 저 솔라의 소환 모습에서 플레이어는 엄청난 감동과 내러티브의 힘을 느끼게 된다.

앞서 ‘다크소울’은 아이템 설명에 텍스트를 흩뿌려 놓는 식으로 이야기를 조각조각내서 플레이어에게 알려준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만드는 모든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특징으로 그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어린 시절 독서광이었던 그는 (특히 H.P.러브크래프트의 팬이었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다음권이 대출되어 없으면 그 책이 반납되기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의 빈 곳을 상상하여 채워 넣고 자신만의 버전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권을 손에 넣고 읽으면서 자신의 상상과 어떻게 다른지 또 같은지를 비교하며 읽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 독특한 독서 경험으로 만들어진 분절된 내러티브들이 비선형적 연결되는 경험이 ‘다크소울’을 비롯한 그의 게임의 독특한 내러티브 전달 방식을 가져왔고 이내 다른 게임들도 이를 모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 창작자의 독특한 개인 경험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형식의 내러티브는 모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쿠엔티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 이후 수많은 타란티노의 아류가 나왔으나 그 누구도 그 어느 작품도 오리지널의 반의 반도 이르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내러티브 기법을 모방한 수많은 게임들 역시 알 수 없는 정보들만 여기저기 던져놓았을 뿐 묘하게 사람을 흡입하며 분절된 내러티브를 능동적으로 이어 붙이게 만드는 그의 글쓰기 솜씨에 이른 작품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게임을 제작할 때 역시 전체 스토리는 혼자만 알고 있고 직원들에게 분절된 이야기들을 메모로만 전해준다고 한다. 그러면 직원들이 모여 그 한정된 메모에 적힌 이야기를 가지고 전체 그림을 추론하느라 이리저리 내러티브를 짜맞춘다고 한다. 신화와 전승을 주로 다루는 그의 이야기는 만들어질 때부터 인간이 신화와 전승을 만들고 물려주는 그 방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이 이야기는 딱 하나 남았다. 이제 조지 R.R 마틴과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만든 ‘엘든 링 Elden Ring’ (2022, 프롬소프트웨어, 반다이남코, 미야자키 히데타카) 출시까지 2개월 남았다.

p.s. 닌텐도의 초기 콘솔 ‘패미컴 NES’와 ‘수퍼 페미컴 SNES’을 개발했던 우에무라 마사유키 上村雅之가 12월 6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천재적인 엔지니어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물건 중 두 가지를 만들었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에무라 마사유키
우에무라 마사유키

(이미지출처=‘Horizon Zero Dawn’ (Guerilla Games, SIE), ‘Metal Gear Solid V: The Phantom Pain’ (Konami), ‘Death Stranding’ (Kojima Production), ‘Ico’ (SIE), ‘Dark Souls’ (From Software, Bandai Namco), ‘上村雅之’ (CESA:上村 雅之【第4回】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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